나는 원래 이경규라는 코미디언을 좋아한다. 그가 한참 잘나가던 시절에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그의 프로그램이나 그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가능한 보려고 하는 편이다.

처음에는 이소룡의 이미지를 내걸고 운동하는 버라이어티도 한참 했었고 때때로 바보 연기도 제법 했었지만 그렇게 오래 방송을 하면서도 그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데뷔할때부터 지금까지 적어도 내눈에는 시종일관 강한 모습으로 비추었고 그것이 또한 그의 캐릭터였다.

그런 그가 남자의 자격 마라톤 편에서 하프마라톤을 완주하고 마지막에 눈물을 보일 때는 사실 다소 놀랐다 - 기보다는 당황했다고 해야하나 - 상황으로 보아 이해는 가지만, 몇번이나 포기하려 하다가 결국 완주를 해낸 그가 마지막에 잠깐 보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들이 포기를 떠올리고, 다시 포기를 포기하고, 또다시 포기를 떠올리는 모습이 그려질 때 마다 나는 거기에 나자신을 겹치면서 응원에 몰입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마라톤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비교한다는게 무리일지도 모르지만 자전거 타면서 긴 업힐을 하다보면 계속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데 그럴때마다 떠올리는 문장이 있다.

'고통은 참을 수 있다. 하지만 포기한다면, 그상처는 평생을 따라다닌다.'

암에 걸려 한쪽 고환, 폐, 뇌의 일부를 절제하고도 제기하여 뚜르드 프랑스 7연패를 달성한 미국의 사이클 영웅 랜스 암스트롱의 말이다. 나에게 그의 자서전격인 '이것은 자전거 이야기가 아닙니다' 라는 책을 사게 만든 문장이기도 하고, 내가 요즈음 나름대로 어려운 도전에 직면할 때마다 나를 받쳐주는 문장이기도 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멘트 길을 혼자 끙끙대며 올라가면서 체력이 고갈되어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패달을 밟고 있는 다리는 비명을 지르며 앞바퀴가 땅에서 들리는걸 막기위해 힘주어 굽힌 팔꿈치가 아파오고 허리가 쑤실때.

그저 한발을 옆으로 내려 딛는 것으로 그 모든 고통을 끝낼수 있는 상황에서, 저 한 문장은 고통속에서도 몸을 움직이도록 등을 떠밀었다..

원체 운동을 안하던 몸인지라 초기에는 체력이 한계에 떨어져 구역질하고 다리에 쥐나고 한것도 여러번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면, 그전까지의 자신을 뛰어넘어 조금이나마 앞으로 더 나아갈수 있다.

자신과 싸운다는건 그런거라고 생각한다. '나'를 어떻게든 포기하게 만들려고 고통을 주고, 유혹하는 '나'를 넘어 그앞으로 조금이라도 나아가는 것. 그리하여 손에 넣게 되는 무언가.

아마 마라톤을 뛰는 모든 이들에게는 그들을 달리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을것 이다. 그것은 달려보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며, 모두에게 각각 다른 무언가일 것이다.

지난번 방송분까지 나는 이경규나 이윤석이나 끝까지 뛸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버라이어티는 말하자면 그저 재미있으면 되는것이고, 거기에 필요한 방송분량은 초중반에 충분히 뽑았다. 그들이 적당한 순간에 포기한다고 뭐라고 할 사람도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끝까지 뛰었다.

이경규도 이윤석도 마지막 5km는 도저히 방송을 위해서 뛰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마지막 5km를 그들은 누구도 아닌 순전히 자기 자신을 위해서 뛰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손에 넣었을 것이다. 이경규의 눈물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자신도 해낼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도저히 할수가 없다고 생각해서 몇번이고 포기하려고 했던 무언가를 결국은 해냈을때 손에 들어온 그 무엇이 바로 그 눈물의 의미가 아닐까...... 

'잡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번 지방선거....  (0) 2010.06.03
아이폰용 스타일러스 팬.  (0) 2010.06.03
선물하기  (0) 2010.05.15
민들레  (0) 2010.03.27
이사온 기념 첫글...인가...  (0) 2009.12.04

+ Recent posts